무엇이 도자기를 하이엔드로 만드는가 — 정직한 답

Matiass Preiss ·

저는 “하이엔드”라는 말을 미더워하지 않습니다. 값이 비싸고 사진이 좋은 것이면 무엇에든 붙고, 도자기에는 그 둘이 넘칩니다. 그러나 공방으로 편지를 보내는 분들이 그 말을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느껴지는 차이에 이름을 붙이려는 것입니다. 그저 비싼 잔과, 집어 드는 순간 스스로를 설명하는 잔 사이의 차이. 그 차이는 실재하고, 정확하게 서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도자기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으로서 드리는 정직한 답입니다. 더 길고 차분한 판은 좋은 도자기를 고르는 안내에 따로 적었습니다. 이 글은 공방 바닥에서 쓴 판입니다.

값은 잘못된 잣대입니다

공장은 원하는 값을 매길 수 있습니다. 공장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은 시간입니다. 이 공방의 잔 하나는 제 손을 적어도 열두 번 지납니다. 무게를 달고, 물레에서 뽑고, 말리고, 깎고, 다시 말리고, 초벌하고, 시유하고, 석기가 되는 온도에서 굽고, 다듬고, 촬영하고, 등록부에 올립니다. 처음 닿은 손과 마지막 손 사이에 몇 주가 지납니다. 살아남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유약이 흘러내리고, 식어 가는 가마 안에서 금이 갑니다. 그 손실은 살아남은 모든 작품이 함께 지고 있는 몫입니다.

그러니 수제 작업의 정직한 값은 재료도 아니고 — 재료는 쌉니다 — 상표도 아닙니다. 상표라는 것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아주 잘 해내는 데 들이는 집중된 시간, 그리고 가마가 가져가는 모든 것입니다. 작품에 진지하게 값이 매겨질 때 매겨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손이 곧 기술입니다

이 세상 도자기의 대부분은 틀에 부어 만듭니다. 똑같은 몸이 만 개 단위로 나옵니다. 그 작업에도 자리가 있습니다. 좋은 식기가 알맞은 값에 존재하는 방식이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다른 범주의 기물입니다. 물레로 뽑은 작품은 한 번만 내려진 결정들의 연속입니다. 벽이 어디까지 얇아지기를 감히 바라는지, 곡선이 어디에서 돌아서는지, 전이 입술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그 결정들을 손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벽 안쪽의 물레 자국, 굽 아래 깎아 낸 나선.

수제 작품이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같음은 공장의 미덕입니다. 공방에서 손이 남긴 작은 편차는 작품의 흠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증거입니다.

불은 공동 저자입니다

산업용 유약은 얌전하도록 만들어집니다. 제가 쓰는 유약은 전부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고른 것입니다. 결정유는 — 할아버지가 수십 년 전 연구를 시작한 뒤로 이 집안의 오랜 집착입니다 — 식어 가는 가마 안에서 결정을 키우고, 같은 모양으로 키우는 소성은 두 번 없습니다. 빙렬 유약은 주인의 손 안에서 여러 해에 걸쳐 계속 자라며, 차와 시간과 함께 선이 짙어집니다. 그 표면의 생애는 유약이 잔의 성격을 바꾸는 방식에 적었습니다.

만든 사람이 온전히 지시할 수 없는 표면은 정의상 대량 생산될 수 없습니다. 좋은 유약에서 깊이를 느끼실 때 느끼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1,300도쯤에서 꼭 한 번 일어났고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을 사건입니다.

기록은 기물만큼 중요합니다

“하이엔드”라는 말에서 아름다움과 아무 상관 없는 부분이 여기 있습니다. 이 작품이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가. 회화는 수백 년 전에 내력의 문제를 풀었습니다. 공방 도자기는 대체로 그러지 못했고, 만든 이가 적히지 않은 그릇은 한 세대 안에 자신의 역사를 잃습니다.

이 공방의 답은 작품 등록부입니다. 모든 작품은 굽에 서명하고 번호를 매겨 기록합니다. 태토, 유약, 소성, 치수, 사진까지요. 판매된 작품도 아카이브에 영구히 남습니다. 자신의 기록된 역사를 지닌 작품은 선반 위에서 보기 좋기만 한 작품과 다른 종류의 소유이고, 제 생각에 그 기록은 이제 “하이엔드”라는 말이 반드시 품어야 하는 것의 일부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가마를 나오는 대로 현재 컬렉션에 오릅니다. 각각 하나뿐이고, 하나씩 촬영하며, 한 번만 판매됩니다.